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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한 방울의 꿀

목사.수필가/ 김덕원 news@vanchosun.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

   

최종수정 : 2017-04-08 08:43

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/수필

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한 꿀벌이 있었는데, 잠시도 쉬지 않고 더 많은 꿀을 모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목표라고 믿고 살았다고 한다. 그러던 어느날 불행하게도 그 꿀벌은 단 한 방울의 꿀도 따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와 자책을 하게 되었다. “꿀을 따지 못하다니, 나는 가치가 없는 존재야. 다른 벌들의 수고와 노력을 내가 축내고 있다니, 오히려 죽는 편이 낳겠어.” 하지만 그때,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. “너는 한 방울의 꿀을 따기 위해 그렇게도 바쁘게 날아 다녔겠지만, 나는 너의 수분활동을 통해서 세상이 아름다운 꽃동산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너에게 꿀을 보여 주었을 뿐이란다.”

오늘 아침 나는,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바쁜 걸음을 잠깐 멈춘다. 누구나 눈에 보이는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생을 불태운다.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, 세상을 아름답게 꽃 피우는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? 지나버린 세월은 항상 부끄러울 뿐이다.

난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시작했다. 멋진 꿈을 가슴에 품었기 때문이라고 포장했지만, 솔직히 말하면 한 방울의 꿀을 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. 물론 대학을 마칠 때까지 주말이면 집에 들리곤 했었지만, 가정이라는 그림 속에서 나는 어쩌면 손님 같은 모양새였다고나 할까?

세월 지나 그 가정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나는 어렴풋이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보았다. 나는 필요를 따라 집으로 향했지만, 가족이 만들어 낸 세상은 집이 아닌 가정이었다는 것을… 눈에 보이는 그 한 방울의 꿀을 잠시만이라도 내려 놓고, 나를 세상 가운데 태어나게 하신 부모님과,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식구라는 인연으로 만나게 된 동생들, 그리고 모든 풍성함이 대가 없이 주어졌던 그 멋진 공동체를 위해 한 방울의 땀이라도 떨어뜨렸어야 했다는 것을 …

나는 결혼을 하자마자 고국을 떠나 외국(캐나다)생활을 시작했다. 난 여전히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유학을 하고, 더 넓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, 마음 한 켠에는 더 고급의 꿀을 따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. 그래서였을까? 어린 딸들에게 시간을 할여 해야 할 때는 공부해야 된다는 핑계를 댔고,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지친 아내에게는 나도 힘드니 투정하지 말고, 더 힘을 내라고만 했다. 경제적으로 힘들어 질 때는 의식 있는 사람의 길은 항상 가난한 것이라고 둘러 대면서, 오로지 정한 목표만을 향해서 달렸다.

이국 땅에 살기 시작하여, 벌써 열 일곱 번의 겨울이 지나갔다. 감사하게도 네 딸들은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고, 사회적으로도 성숙할 뿐 아니라, 지적인 면에서나 영적인 면에서도 균형 잡힌 모양으로 잘 자라 주었다. 모난 부분이 없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! 물론 아내도 그 모진 세월을 잘 참아 주었고, 육아에서 자유로워진 지금,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며, 만학의 열공으로 칼리지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.

그렇게 아름다운 가정을 바라보며, 오히려 난 미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본다. 그렇게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한 방울의 꿀, 더 고급지고, 더 값이 나갈만한 꿀을 향한 끝 없는 질주, 어쩌면 그것이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해도, 결국엔 욕심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? 그 한 방울의 꿀이라도 잠깐 내려놓고, 아주 작은 한 방울의 정성 어린 땀 방울이라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떨어뜨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, 지금 이 미안함이라도 가리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.

밴쿠버에서의 사역도, 이제 토론토에서의 또 다른 사역에서도, 난 나의 기쁨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 살고 있노라고, 난 희생하고 있는 것이라고, 난 쉬운 길보다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노라고 주장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만, 어쩌면 나만의 아집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, 고상한 꿀을 따는 척 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?

그래도 주변에 함께하는 많은 분들이 때론 이기적인 모습을 내던지며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해 가며, 때로는 감동만 받는 사람이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우뚝 서기도 하며, 때로는 내 인생 조차도 힘겹게 감당하던 일인 분 인생을 떨쳐 버리고, 더 많은 사람을 세워 주기로 다짐하는 다인 분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크나 큰 행운이고, 행복이 아닐 수 없다.

그렇게 변화되는 세상을 바라보며, 난 여전히 미안한 마음으로 내 마음을 바라본다. 수많은 미사여구로 포장되었지만, 오염되고 무너진 질서 위에 내 걸린 한 방울의 꿀, 그 한 방울을 잠시라도 뒤로 하고, 큰 바위라도 순식간에 삼켜 버리는 세상의 탐욕으로부터 헤엄쳐 도망치는 그 처절한 몸부림에 내 한 방울의 땀이라도 더할 수 있었다면, 그래도 난 부끄럽지는 않을 텐데 생각하면서 말이다.

오늘은 봄비가 조용히도 내린다. 그래도 겨울은 못 버틸 것이지만……

나는 커피숍 창가에 앉아 한 방울의 꿀 대신 커피 두 잔을 시켜놓고 전화기를 든다. 누구에겐가 건네줄 땀 한 방울을 담아서…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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